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브라질 제국 (문단 편집) == 후일담 == [[페드루 2세(브라질)|페드루 2세]] 폐위 후에도 노예제가 사라졌다는 점을 빼면 브라질의 상황이 딱히 극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. 정치는 황제만 사라졌을 뿐, 실질적으로 과두제에 가까운 형태로 운영되었다. 또한 이 때문에 토지개혁이 진행되지 않았고[* 사실 이러한 소수계층의 토지 독식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. 물론 토지 개혁 시도가 없었던것은 아니었지만 전체 농토에 비하면 턱 없이 적거나 아니면 실행되지 못했다.], 브라질 남동부의 비옥한 토지는 주로 백인 이주민들에게 분배되었기 때문에 흑인들이나 빈민들은 여전히 고달픈 삶을 면치 못했고[* 그렇다고 백인 이주민에 대한 대우가 좋았냐면 그것도 아니었던 것이, 기존의 브라질 농장주들이 백인 소작민들을 인간이하 취급하며 착취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. 이 때문에 쓴맛을 처절히 맛본 백인 이주민들은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더 살기 좋은 아르헨티나나 우루과이로 재이민하기 일쑤였고, 한때 독일과 이탈리아 정부에서 브라질 이민을 제한했을 정도였다.] 흑인들에게 대한 차별대우는 여전했다. 이러한 상황이 조금이나마 개선된 것은 [[제툴리우 바르가스]] [[바르가스 시대|정권]]대 와서였다. 여하튼 브라질도 민주정-독재정을 거쳐 1980년대 군부독재가 종식되고 [[민주화]] 이후로도 군사정부가 남기고 간 엄청난 외채에다가 [[초인플레이션]]까지 겹쳐 정국이 혼란스러웠던 탓에 1990년대 초반에 뜬금없이 대대적인 제정 복고 운동이 벌어져서 실제로도 1993년 4월 [[https://pt.wikipedia.org/wiki/Plebiscito_no_Brasil_em_1993|국가 정체(政體)를 묻는 국민투표]]가 치러졌다(공화국/군주국, 내각제/대통령제). 이러한 왕정복고 시도는 브라질 대중들에게 화제거리가 되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큰 호응을 얻지 못했으며 실제 투표에서도 이러한 상황이 잘 드러나서 유효표 중 복벽을 지지하는 결과는 13.4%의 득표를 건지는데 그쳤다. [[상파울루]], [[리우데자네이루]]에서 비교적 높은 지지를 얻었으나 그래봤자 16% 좀 넘는 수준이다. 브라질 제국은 사라졌으나 브라질 황제의 계보는 남았고 페드루 2세보다 오래 산 유일한 자식인 딸 [[이자베우]]가 승계하게 된다. 이자베우의 사망 이후에는 그녀의 손자 페드루 엔히키 왕자[* 이자베우의 차남인 루이스의 아들]가 승계하였고, 브라간사 왕가는 오를레앙-브라간사 왕가로 이어진다.[* 그 외에도 자손들이 구 포르투갈 왕가 및 구 유고슬라비아 왕가, 오를레앙 왕가, 양시칠리아 왕가, 뷔르템베르크 왕가로 연결된다. 이자베우의 손녀인 마리아 프란시스카(장남 페드루의 딸)가 현재 포르투갈 브라간사 왕가의 수장인 두아르트 피우의 어머니이며, 마리아 프란시스카의 조카인 마리아 다 글로리아는 [[페타르 2세]]의 아들 알렉산다르와 결혼해 세 아들을 두고 이혼했다. 또한 마리아 프란시스카의 언니 이자베우는 오를레앙 왕가의 현 수장 장의 할아버지인 앙리 로베르 페르디낭과 결혼해 5남 6녀를 두었고, 그들 중 두 딸이 양시칠리아 왕가 및 뷔르템베르크 왕가와 통혼했다.] [[https://i.4pcdn.org/pol/1521847609756.png|명목상 브라질 제위 계승 순위권자 7명의 초상(2019년)]][* 바수라스(Vassouras)분파. 수장인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Luiz_of_Orl%C3%A9ans-Braganza|루이스]](1938~2022)는 페드루 엔히키 왕자의 장남이다.][* 현재 브라질 황가는 이자베우의 차남 루이스의 계통인 바수라스 계통과, 이자베우의 장남 페드루 지 아우칸다라의 계통인 페트로폴리스 계통으로 분열되어 있다. 본래 이자베우의 후계자였던 페드루 지 아우칸다라가 체코인 귀족과 결혼하며 [[귀천상혼]] 논란이 생기자 계승권을 포기하였는데, 1940년 페드루가 사망한 뒤 그 장남 페드루 가스탕이 구 브라질 제국 헌법에 황위 계승권자가 왕족과 결혼할 것을 규정한 조항이 없기에 귀천상혼에 따른 부친의 계승권 포기는 법적 근거가 없는 조치였으므로 무효라는 주장을 펼치며 자신이 황가의 수장임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.] 2022년 7월 가주 루이스가 서거하자 공화국 정부는 대통령령으로 7월 15일을 애도일로 선포했다.[[https://eurohistoryjournal.blogspot.com/2022/07/brazil-government-official-mourning-for.html?m=0|#]] 후계자는 동생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Bertrand_of_Orl%C3%A9ans-Braganza|베르트랑]] (1941~)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